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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소월의 외증손녀 김상은씨에게선 시대를 뛰어넘은 신앙적 정서가 느껴졌다. 지난 21일 서울 용산구 소월길 인근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김씨의 모습. 신석현 포토그래퍼
21일 서울 용산구 소월길 인근 카페에서 만난 김상은(48)씨에게선 시대와 성별, 예술 장르를 초월한 시인 김소월의 정서가 느껴졌다. 그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로 꼽히는 ‘진달래꽃’ ‘엄마야 누나야’의 주인공인 김소월의 외증손녀다.
여성전문대출 김씨의 삶은 숱한 변곡점을 거쳤다. 최고의 오페라 가수를 꿈꾸던 청년에서 CCM 가수로, 세상의 관심을 뒤로한 채 신앙을 지켜내기 위해 돌연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것으로, 십수년 만에 다시 고국을 찾아 소월의 시상을 담은 찬양을 부르는 것으로 말이다. 그는 빛바랜 책장을 펼쳐 오래 전 이야기를 펼쳐놓듯 소월의 가문에 처음 복음의 씨가 떨어졌던 날을 떠 추진과제 올렸다.
굴곡진 역사 속 뿌리 내린 신앙
“일본 사람들에게 맞아 사경을 헤매던 아버지를 바라보던 어린 소월의 마음엔 늘 응어리가 있었을 거예요. 소월의 할머니는 몸져누운 아들과 장손 소월이를 위해 마당에 돌을 쌓아 놓곤 정성을 인터넷사업자 다해 기도를 올렸었답니다. 그때 평양에 기독교가 들어왔고 소식을 들은 할머니께서 교회를 찾아가 가정을 위해 기도한 것이 신앙의 마중물이었던 거지요.”
굴곡진 역사 속에 뿌리 내린 가문의 신앙에 비해 김씨의 기독교적 출발선은 느지막하게 찾아왔다. 성악과 입시 준비생 시절 만난 선생님의 “성가대 활동을 외환은행 정기예금 해야 레슨을 해주시겠다”는 말씀에 어쩔 수 없이 교회를 찾았던 게 시작이었다. 야트막하게 시작된 신앙은 그가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이탈리아 유학까지 다녀온 뒤 크게 요동쳤다.
시인 김소월의 외증손녀 김상은씨가 지난 21일 서울 임금 용산구 소월길 인근 카페에서 자신의 삶과 신앙, 소월의 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오페라의 프리마돈나에서 CCM 가수로
교회 성도들과 호스피스 병동에 찬양 봉사를 하러갔던 날이었다. 솔리스트로 노래하는 그의 시선에 호흡조차 힘겨운 모습으로 찬양을 경청하는 환우가 들어왔다. 김씨는 “생애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찬양을 듣고 있는 분들 앞에 서면서 ‘내가 가진 달란트로 재능 기부나 한 번 하자’는 교만한 마음뿐이었던 내 모습에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다”고 회상했다.
살면서 처음 경험한 절절한 회개는 오페라 대신 찬양을 부르는 삶을 향한 고백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고백은 소월의 시와 만나며 꽃을 피웠다. 김소월 탄생 110주년이 되던 2012년, 지인을 통해 ‘소월아트홀 개관 5주년 기념 공연’에 서달라는 요청이 왔다. 평생 알려지지 않았던 ‘소월의 후손 김상은’이 대중 앞에 처음 서게 된 순간이었다.
소월의 시, 외증손녀의 노래와 만나다
“처음엔 거절했어요. 찬양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이 섰는데 그와는 다른 길처럼 느껴졌고, 할아버지를 위해 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 핏줄이란 이유로 갑작스레 등장하는 것도 어색했지요. 그런데 ‘소월의 시에 담긴 정서와 복음의 온기를 함께 전할 수 있다면’이란 생각에 마음을 고쳐먹었어요. 무대에서 가곡 ‘못 잊어’와 함께 찬양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는 조건으로 수락했죠.”
오산학교 시절의 김소월의 모습. 김상은 제공
민족의 토속적 한을 담아낸 시를 남긴 채 서른 둘, 짧은 생을 마감한 소월과 그의 시가 오롯이 전달되도록 말하듯 노래하는 30대 외증손녀의 만남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소월을 사랑하는 이들은 김상은의 목소리로 세대와 시대를 아우르는 소월의 시를 만났다.
무대에서 받은 사랑은 위로의 정서를 담은 앨범 ‘소월의 노래’ 제작으로 이어졌다. ‘진달래 꽃’ ‘개여울’ ‘엄마야 누나야’ 등 소월의 시에 CCM 작곡가 이권희의 음악이 만나 찬양의 옷을 입은 시집을 만들어 냈다. 특히 ‘못 잊어’엔 기타리스트 함춘호(시인과 촌장)의 연주가 더해져 농도 짙은 그리움을 담았다.
1969년 출간된 김소월의 시집 '못 잊어' 초판. 김상은 제공
활발한 활동과 언론의 조명은 생존 여부조차 까마득했던 혈육을 상봉하게 했다. 미국 LA에 거주하던 소월의 여동생, 고(故) 김인저 씨의 자녀들과 연락이 닿은 것이다. 김씨는 LA에서 나눈 가족과의 대화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해변을 걸으면서 제게 따뜻한 목소리로 말씀해주셨어요. ‘고조. 상은이가 김소월 후손으로서 얼굴 알려지는 일을 하니까 많이 힘들 거야. 슬퍼 말라우. 괴로워 말라우. 힘들 때는 예수님 ‘고 양반’만 바라보면 돼.’ 그 말씀이 버팀목이 돼줬지요.”
노래를 내려놓고 신앙을 심다
문학계와 대중의 관심이 커질수록 감사함과 함께 고민도 커졌다. ‘김소월의 후손’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온갖 행사에 소비되듯 살아가는 것은 자신이 결단했던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과는 조금씩 멀어지는 길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는 다시 결심했다. 그리고 두 자녀와 함께 아무런 연고가 없는 미국 오클라호마로 떠났다. 김씨는 “그 동안 한 사람의 크리스천으로서 더 가까이 하지 못했던 성경을 깊이 묵상하고 신앙을 바로잡아야겠다는 일념뿐이었다”고 했다.
타지 생활의 외로움을 달래준 건 매일 아이들과 함께 하는 큐티(QT)였다. 묵상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일상에서 바라본 모든 것은 신앙 노트로 기록됐다. 그리고 그 시간은 그를 ‘하나님께 온전히 찬양을 올리는 사람’으로 단련시켰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활발해진 온라인 성경공부가 제게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느껴졌어요. 당시 베이직교회(조정민 목사) 김성동 부목사님께서 진행하는 ‘줌(zoom) 성경공부’가 있었는데 혼자 성경 읽으며 막혔던 부분들을 해소하고 더 깊이 성경을 공부하는 기회가 됐죠. 목사님께서 사진 촬영에 달란트가 있어서 매일 예수님과 교감하며 촬영한 사진을 한 장씩 보내주셨는데 큰 위로가 됐어요. 그때 떠올렸습니다. 주님이 주신 달란트로 다시 위로를 전할 수 있는 노래를 해야겠다고.”
가슴에 품은 신앙, 공감으로 다시 쓰다
김상은씨가 지난해 발표한 싱글 앨범 '초혼'의 자켓 이미지. 김상은 제공
지난해 10월 한국을 찾았을 때 김씨는 소월의 시 ‘신앙’을 다시 꺼내들었다. 12년 전 활발하게 활동할 때 ‘언젠가 꼭 이 시를 노래하겠노라’며 마음에 담아뒀던 시였다. ‘신앙’에는 문장마다 기독교적 정서가 오롯이 담겨 있다. ‘무거운 짐에 우는 목숨’이란 대목에선 자연스레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마 11:28)가 떠오르고, ‘두드리던 문은 멀지 않아 열릴지니’에선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 7:7)가 생각난다.
김씨는 “공감한다는 건 같은 경험을 했다는 것이고 그것만으로도 서로에게 큰 위로가 된다”며 “그렇게 ‘신앙’을 노래한 곡이 ‘공감’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를 시작으로 직접 작사 작곡한 CCM 발표가 이어졌다.
미국에서 꼼꼼히 적어 내려간 신앙 노트가 노랫말이 됐다. ‘꿈이 곰탕’에선 곰탕의 푹푹 고아지는 소리를 은혜의 빗소리로 비유했고, 어린이들과 함께 부른 곡 ‘피클’에선 ‘오이가 깨끗한 유리병에 들어가 예수님에게 스미고 절여지는 과정’을 묘사했다.
김상은씨가 미국 오클라호마에 거주하며 매일 기록한 신앙 노트. 김상은씨 제공
그에게선 김소월이란 ‘무거운 이름’에 얽매이지 않는 삶이 엿보였다. 오히려 그 이름을 품고, 노래로 위로를 건네는 삶을 지향하고 있었다.
“소월의 시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듯, 김상은의 노래도 누군가의 마음에 조용히 위로로 다가갔으면 좋겠어요. 그 이름을 통해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길이 분명해졌거든요. 문학과 음악, 그리고 신앙이 함께 흐르는 이 길에서 하나님께 받은 사랑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을 노래하고 싶어요.”
신석현 포토그래퍼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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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서울 용산구 소월길 인근 카페에서 만난 김상은(48)씨에게선 시대와 성별, 예술 장르를 초월한 시인 김소월의 정서가 느껴졌다. 그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로 꼽히는 ‘진달래꽃’ ‘엄마야 누나야’의 주인공인 김소월의 외증손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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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곡진 역사 속 뿌리 내린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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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소월의 외증손녀 김상은씨가 지난 21일 서울 임금 용산구 소월길 인근 카페에서 자신의 삶과 신앙, 소월의 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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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처음 경험한 절절한 회개는 오페라 대신 찬양을 부르는 삶을 향한 고백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고백은 소월의 시와 만나며 꽃을 피웠다. 김소월 탄생 110주년이 되던 2012년, 지인을 통해 ‘소월아트홀 개관 5주년 기념 공연’에 서달라는 요청이 왔다. 평생 알려지지 않았던 ‘소월의 후손 김상은’이 대중 앞에 처음 서게 된 순간이었다.
소월의 시, 외증손녀의 노래와 만나다
“처음엔 거절했어요. 찬양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이 섰는데 그와는 다른 길처럼 느껴졌고, 할아버지를 위해 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 핏줄이란 이유로 갑작스레 등장하는 것도 어색했지요. 그런데 ‘소월의 시에 담긴 정서와 복음의 온기를 함께 전할 수 있다면’이란 생각에 마음을 고쳐먹었어요. 무대에서 가곡 ‘못 잊어’와 함께 찬양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는 조건으로 수락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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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토속적 한을 담아낸 시를 남긴 채 서른 둘, 짧은 생을 마감한 소월과 그의 시가 오롯이 전달되도록 말하듯 노래하는 30대 외증손녀의 만남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소월을 사랑하는 이들은 김상은의 목소리로 세대와 시대를 아우르는 소월의 시를 만났다.
무대에서 받은 사랑은 위로의 정서를 담은 앨범 ‘소월의 노래’ 제작으로 이어졌다. ‘진달래 꽃’ ‘개여울’ ‘엄마야 누나야’ 등 소월의 시에 CCM 작곡가 이권희의 음악이 만나 찬양의 옷을 입은 시집을 만들어 냈다. 특히 ‘못 잊어’엔 기타리스트 함춘호(시인과 촌장)의 연주가 더해져 농도 짙은 그리움을 담았다.
1969년 출간된 김소월의 시집 '못 잊어' 초판. 김상은 제공
활발한 활동과 언론의 조명은 생존 여부조차 까마득했던 혈육을 상봉하게 했다. 미국 LA에 거주하던 소월의 여동생, 고(故) 김인저 씨의 자녀들과 연락이 닿은 것이다. 김씨는 LA에서 나눈 가족과의 대화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해변을 걸으면서 제게 따뜻한 목소리로 말씀해주셨어요. ‘고조. 상은이가 김소월 후손으로서 얼굴 알려지는 일을 하니까 많이 힘들 거야. 슬퍼 말라우. 괴로워 말라우. 힘들 때는 예수님 ‘고 양반’만 바라보면 돼.’ 그 말씀이 버팀목이 돼줬지요.”
노래를 내려놓고 신앙을 심다
문학계와 대중의 관심이 커질수록 감사함과 함께 고민도 커졌다. ‘김소월의 후손’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온갖 행사에 소비되듯 살아가는 것은 자신이 결단했던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과는 조금씩 멀어지는 길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는 다시 결심했다. 그리고 두 자녀와 함께 아무런 연고가 없는 미국 오클라호마로 떠났다. 김씨는 “그 동안 한 사람의 크리스천으로서 더 가까이 하지 못했던 성경을 깊이 묵상하고 신앙을 바로잡아야겠다는 일념뿐이었다”고 했다.
타지 생활의 외로움을 달래준 건 매일 아이들과 함께 하는 큐티(QT)였다. 묵상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일상에서 바라본 모든 것은 신앙 노트로 기록됐다. 그리고 그 시간은 그를 ‘하나님께 온전히 찬양을 올리는 사람’으로 단련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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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품은 신앙, 공감으로 다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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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한국을 찾았을 때 김씨는 소월의 시 ‘신앙’을 다시 꺼내들었다. 12년 전 활발하게 활동할 때 ‘언젠가 꼭 이 시를 노래하겠노라’며 마음에 담아뒀던 시였다. ‘신앙’에는 문장마다 기독교적 정서가 오롯이 담겨 있다. ‘무거운 짐에 우는 목숨’이란 대목에선 자연스레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마 11:28)가 떠오르고, ‘두드리던 문은 멀지 않아 열릴지니’에선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 7:7)가 생각난다.
김씨는 “공감한다는 건 같은 경험을 했다는 것이고 그것만으로도 서로에게 큰 위로가 된다”며 “그렇게 ‘신앙’을 노래한 곡이 ‘공감’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를 시작으로 직접 작사 작곡한 CCM 발표가 이어졌다.
미국에서 꼼꼼히 적어 내려간 신앙 노트가 노랫말이 됐다. ‘꿈이 곰탕’에선 곰탕의 푹푹 고아지는 소리를 은혜의 빗소리로 비유했고, 어린이들과 함께 부른 곡 ‘피클’에선 ‘오이가 깨끗한 유리병에 들어가 예수님에게 스미고 절여지는 과정’을 묘사했다.
김상은씨가 미국 오클라호마에 거주하며 매일 기록한 신앙 노트. 김상은씨 제공
그에게선 김소월이란 ‘무거운 이름’에 얽매이지 않는 삶이 엿보였다. 오히려 그 이름을 품고, 노래로 위로를 건네는 삶을 지향하고 있었다.
“소월의 시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듯, 김상은의 노래도 누군가의 마음에 조용히 위로로 다가갔으면 좋겠어요. 그 이름을 통해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길이 분명해졌거든요. 문학과 음악, 그리고 신앙이 함께 흐르는 이 길에서 하나님께 받은 사랑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을 노래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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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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