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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가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한 지 한 달 남짓 지난 서기 1392년 8월 13일자 조선왕조실록의 기사다. 조선의 시작을 알리는 교과서나 책에서는 조선이 건국하고 한양으로 도움이 자연스럽게 옮겨진 것으로 묘사한다. 사실,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면 도읍을 바꾸는 것은 기본 상식에 속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성계 역시 도평의사사에 명령해 한양을 콕 집어서 도읍을 옮기라는 명령을 내렸다. 도평의사사는 고려 말 충렬왕이 도병마사를 개칭한 관청으로, 국정을 총괄하는 기구였다. 도당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며 조선 초까지 유지되었다. 정종 때 도평의사사를 바꾼 이름이 바로 의정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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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야경 (직접 촬영)


솔직히 실록에서 이 기록을 봤을 때는 이것으로 천도 관련 기록은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역사를 너무나 가볍게 본 나의 실수였다. 생각해보면 2천년대 초반 행정수도 이전 논란 때 서울 시민들의 반응을 떠올리면 당시에는 더 심했으면 기업은행 아파트담보대출 심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서울 시민이라는 장점과 특권이 한두 개가 아닌데 왕조시대에는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한양 천도 명령은 당장 최측근인 배극렴과 조준 등에 의해서 제동이 걸렸다. 물론 한양으로 천도하는 것 자체를 막는 건 아니었고, 궁궐과 성곽도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한양으로 천 청약 1순위 도하면 호종하는 사람들이 민가를 빼앗아서 사용하려고 들 것이기 때문에 궁궐과 관사를 지은 후에 옮기자고 한 것이다. 새로 건국한 조선에서는 백성들의 민심을 얻는 것은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이성계는 일단 두 사람의 건의를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몇 년간의 혼란이 이어진다. 이성계를 도와서 조선을 건국한 개국공신들인 신진사대부들 역시 대부분은 개경에서 태어났거나 슈퍼직장인증후군 개경이 정치적인 근거지였기 때문에 대부분 천도에 적극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신도(新都)라고 불리는 한양으로의 천도는 지지부진했다. 그 와중에 뜬금없이 계룡산 일대가 새로운 도읍 후보지로 떠올랐다가 여러 가지 이유로 기초공사를 진행하던 중에 중단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돌고 돌아서 다시 한양이 천도 후보지가 되었다.
문제는 저축은행 대환 우리가 알고 있는 한양의 경북궁 자리가 아니라 다른 곳이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이다. 바로 안산이라고도 불리는 무악산 남쪽이었다. 한반도에서 가장 좋은 입지조건은 북쪽에 산이 있고 남쪽이 트여있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강이 흐르면 금상첨화였다. 북쪽의 산은 추운 바람을 막아주고, 남쪽의 벌판은 농업과 인구를 위한 공간이 되었다. 따뜻한 남향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남쪽은 어떤 일이 있어도 평지나 혹은 야트막한 내리막이어야만 했다. 거기다 수상 운송이나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강이 있는 편이 좋았다. 무악산 남쪽이 딱 그런 케이스였다. 특히 개국공신 중 한명인 하륜이 맹목적이라고 할 정도로 이곳을 도읍 후보지로 추천했다.
하지만 같은 조준을 비롯한 다른 대신들은 극력 반대했다. 무악산 남쪽의 땅이 너무 좁아서 도읍이 될만한 곳이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이에 하륜은 비록 땅이 좁아보이지만 명당이 분명하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이성계는 하륜의 의견을 존중해서 직접 살펴보고 결정하겠다고 했지만 실록의 그 다음 기록이 서운관 관원들의 반대를 이유로 다른 대신들에게 다시 의견을 묻는 것이었다. 당연히, 대신들은 극력 반대했고, 결국 무악산 남쪽으로의 천도 역시 무산되고 말았다. 반대 의견을 낸 서운관에서는 지금의 경기도 장단에 있는 불일사와 경기도 파주에 있는 선고개를 각각 도읍 후보지로 추천했다. 하지만 남은이 선고개에 직접 가서 살펴보고 천도 후보지로서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선운관 관원들을 꾸짖었다. 이후 다시 무악산 남쪽이 도읍 후보지가 되면서 이성계가 직접 그곳으로 행차했지만, 여전히 대신들의 반대가 극심했다.
결국 인내심의 화신인 이성계가 짜증을 내면서 대체 어디로 도읍을 정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때 나온 의견이 송경, 그러니까 개경에 그냥 눌러앉자는 것이었다. 그러자 화가 난 이성계는 도읍으로서 검증된 삼국의 도읍 중 한 곳으로 옮기겠다는 폭탄 발언까지 해버린다. 결국 신하들은 남경, 즉 한양을 도성으로 정하는게 좋겠다는 식으로 얼버무린다. 이후에도 적성의 광실원 동쪽에 있는 계족산과 도라산이 언급되었지만 역시 부적합 판정을 받는다. 결국 돌고 돌아서 한양으로 도읍이 정해진다.
그윽이 한양을 보건대, 안팎 산수의 형세가 훌륭한 것은 옛날부터 이름난 것이요. 사방으로 통하는 도로의 거리가 고르며 배와 수레도 통할 수 있으니, 여기에 영구히 도읍을 정하는 것이 하늘과 백성의 뜻에 맞을까 합니다.
좌정승 조준과 우정승 김사형이 주도해서 올린 도평의사사의 상주문 중 일부 내용이다. 이 상주문이 이성계에게 보고된 것이 서기 1394년 8월 24일이다. 이성계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라고 지시한지 2년만의 일이다. 새로 나라를 세울 정도의 강력한 권력을 가진 이성계조차 결정하는데 2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될 정도로 도읍을 옮기는 것은 정말 어렵고 힘든 일이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북악산을 등지고 경복궁이 지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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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섭 작가